



폭풍같은 어린이날 연휴가 끝나고 아이들은 완전히 뻗어서 기절하듯 잠에 들었습니다. 어린이날에는 그냥 좀 더 신나게 놀고, 평소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주려고 했습니다. 평소처럼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고 뛰다가 다투고 울고 떼쓰고 숨이 안쉬어질 정도로 웃었습니다. 어찌나 온 힘을 다해 놀았는지 아이들이 연휴 둘째날에는 지쳐서 열이 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날을 아주 어린이답게 보낸 것 같아 부모로서 조금 뿌듯한 마음입니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아수라장입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타고 다녔던 차 뒷자석은 과자 부스러기와 먼지, 빗물자국, 발자국이 한가득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뜻에 좀처럼 따라주지 않습니다. 예쁘고 정성스럽게 밥을 차려주면 복스럽게 잘 먹어줄 것을 기대하지만, 한두 숟갈 먹는둥 마는둥 하다가 그만 먹고싶다고 한다든지, 부모 나름으로 재밌는 계획을 세워서 데려가면 금새 지쳐서 집에 가고싶어 한다든지, 말도 안되는 일로 떼를 쓴다든지, 예절을 가르쳐줘도 좀처럼 접수하지 못한다든지 하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만지지 말라는 것은 왜 꼭 만지는 것이며, 안전벨트는 왜 그렇게 단정하게 매고있지 못하는지, 조심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칠칠맞게 이것저것 흘리는 것인지. 말 안듣는 아이는 어른의 눈으로는 얼핏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보통 아이들이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것도 적잖이 신경쓰이고 걱정되는 일입니다. 넓은 곳에 닿으면 일단 달려나가보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다보면 발걸음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아무 일 없이 다가가서 콕콕 찔러보면 킥킥 웃다가 갑자기 놀이가 시작되는 모습, 아이들의 아이 다움이 아이들을 몹시도 사랑스럽게 합니다.
초등학교에 올라간 첫째,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를 보면 항상 아쉬운 부분들에 더 신경이 쓰입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느리고 부족한 부분이 먼저 부각되는 탓에 아이의 장점은 당연한 것으로 넘겨버리게 됩니다. 친구 관계에서 소극적인 첫째의 모습을 걱정하느라 섬세한 손길로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먼저 기억하기가 어렵고, 덜렁거리는 둘째의 모습을 걱정하느라 친구들과 동생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다정한 모습을 먼저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모의 걱정을 해소하려다 보니 이것저것 아이들에게 피곤한 일을 시키기도 했었습니다. 이번 연휴 중 하루는 어디 멀리 있는 공원이나 키즈카페가 아니라, 집에서 30걸음 떨어진 놀이터에서 친구와 종일 모래 놀이를 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먹으러 집에 들어올 때까지 한 장소에서 한 가지 놀이를 했습니다. 감각이 예민해서 살에 뭔가 닿는 것을 불편해 한다고 몇 년 전에 감각 통합 치료까지 고려했던 아이가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어서 녹초가 된 모습이 영락없는 개구쟁이 어린애였습니다. 귀찮다는 아이들을 욕실에 던져 놓고 목욕을 시키면서, 어린 아이가 어린이답게 하루를 보낸 꼬질꼬질하고 지친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뿌듯하던지요. 밥 안 먹는다고 떼쓰는걸 먹이느라 짜증은 좀 냈지만, 부모의 역할은 역시 좋은 것을 물려주거나 좋은 것을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를 아이답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맞벌이 실수령 각각 300-500 이상인 자는 복이 있나니 아이를 한 명 낳아 기를지어다.” 가난과 빈부 격차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덮어놓고 아이를 낳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살면서 한번도 부자인 적이 없었으니 부자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결혼하는 친구들 중에 많은 신혼부부가 서로의 소득을 계산해본 결과 도저히 아이를 낳아서는 개인의 삶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미리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유학 기간, 첫째 아이가 찾아올 무렵에 저는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펼쳐 들었는데, 첫 페이지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이 말은 지금도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좌우명입니다. 마태복음 5: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이 가난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몸이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돈 많은 기독교가 세상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역사에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가난하게 사는 일은 세세한 노력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사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에 가깝습니다. 신앙 생활 기간 동안 기도 중에 계산기를 두드린 적이 없다는 사실은 자본주의에 조금이라도 타협한 시각에서는 몹시 부끄럽고 무책임한 일이지만, 내가 믿는 신이 만물의 주인이라는 사실 위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 미묘한 일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신앙을 가지면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말도 엉터리고, 그래도 자본주의에 사는 이상 현실적인 문제들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도 그럴듯하지만 틀린 말입니다. 전 항상 아쉬움과 열등감 속에 살았지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적고 보니 모든 방향으로 오해의 소지가 참 많은 말입니다. 제가 하려는 예술 활동으로 이것들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앞으로 필요한 돈들은 무거운 숙제입니다. 두 딸을 키우며 미술 작업에 조금씩 속도를 내며 무언가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자주 들 때 쯤, 막내 지음이가 찾아왔습니다. 아내에게 소식을 듣고, 그 주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서 한참을 예배당에 앉아 신을 찾았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 아닌지 묻고 묻고 또 묻느라고. 막내가 태어나고 작업실에 들어가는 시간이 줄다 보니 차라리 육아 휴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어진 선 위의 한 점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현실에서 영원으로 맞닿아있다는 가르침을 떠올리며 후회와 걱정을 접어두고 지금 눈앞에 닥친 설거지와 이유식 만들기에 조금이나마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연휴 마지막 날 아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사 먹으며, 큰 맘 먹고 비싼 음식을 사줬는데 그것도 먹기 싫다고 투정 부리다가 음식 대신 아이스크림을 한 대접 퍼와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퍼먹는 모습을 쳐다보면서, 구체적으로 바란 적 없는 나의 모습, 아이다운 내 아이들을 사랑하며 사는 나의 모습을 갖게 해주신 나의 신을 떠올립니다. 연휴 열심히 잘~보냈습니다. 고맙습니다.
'평소에 하는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5.01.18 (0) | 2025.08.13 |
|---|---|
| 가결 소식에 한숨 돌린 사람이 생각나는 대로 쓰는 아무말 (0) | 2025.08.13 |
| 봄맞이 가족사진 갱신 (0) | 2025.08.13 |
| 이웃의 고통 앞에서 (0) | 2025.08.13 |
| 막내 지음의 세례식 축하편지 (0) | 2025.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