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소에 하는 생각

셋째아이를 맞이합니다. 많은 분들이 건강과 평안을 바라주신 덕분에 저희집 셋째아이가 무사히 누나들을 만났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누나들은 막 태어난 아이에게 종일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아이라서 이전보다는 수월할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졸이는 우여곡절 끝에 생명이 탄생하는 장면을 또다시 목격하니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그 생각이 불꽃처럼 기억에서 되살아났습니다. 아내는 진통을 겪는동안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침착하게 고통을 견디어냈습니다. 저는 이렇게 부드러우면서 강인한 사람을 만나 짝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아기와 엄마가 입원해있는 2박 3일동안 저는 첫째 둘째를 데리고 동네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동생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 더보기
12월을 맞으며 막내는 혼자서도 잘 자고, 불필요한 일로 투정부리지 않는다. 필요가 생겨 보채는 막내아이를 달래주러 가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마다, 뽀송한 아이의 얼굴이 잠시 멈춰 숨을 고르게 만든다. 황달이 다 나아서 우유빛으로 뽀얗게 밝아진 얼굴은 온 힘을 다해 찡그리며 울어도 그저 아름답다. 칭얼거리다가도 얼굴을 마주하면 활짝 웃어주고, 들어안아 흔들어주면 금새 잠든다. 내 삶에 마지막 아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통통하게 오른 볼에 내 얼굴을 가져다 대본다. 바로 한꺼풀 안에 생기가 흐르는 따뜻한 피부, 삭은 젖냄새. 첫째 둘째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갓난 아기를 돌보다보니 오히려 불필요한 생각과 행동이 줄어들고,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일들에 집중하게 된다. 몇일 전,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 아내를 정말 오.. 더보기
첫째딸을 재우면서 평소에 엄마랑 자던 첫째아이가 아빠가 있는 방 문을 슬쩍 열면서 들어왔다. 오늘은 아빠랑 자고싶다고 한다. 온가족이 감염병에 걸려 격리중이다. 아이들은 이제 증상이 가라앉았는데 엄마는 코로나 증상이 늦게나타나서 한참 고생하고 둘째랑 일찍 잠들었다. 나는 앉아서 한참 뭔가 적고 있었는데, 일단 내려놓고 같이 누웠다. 아이는 잠깐 아빠 옆에 누워서 까불더니, 몇번 뒤척거리다가 고른 숨을 내쉰다. 꼭 어디 가지 말라는 것처럼 아빠 팔을 꼭 붙들고 잔다. 분명히 얘를 팔에 들고 포옥 감싸안으면서 재우던게 얼마전인 것 같은데, 참 희안한 기분이다. 몇일전 아이가 목이 아프다가 확진판정을 받아왔을 때 한 오분정도 엉엉 울었다. 딱히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는 아니었다. 그냥 아이가 병원 신세를 질 때마다 다 내탓.. 더보기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전염병 사태가 시작되기 직전 참여한 모임에서 한 목사님에게 우울 관련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전 원래 그림자같은 성격의 사람이라 어지간하면 강의의 소감을 나눈다거나 강연자와 대화하려 하는 일이 없는데,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어영부영 우물쭈물 다가가 저도 우울증 환자라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의 답을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시대에 당연하죠, 어떻게 아닐 수 있습니까?" -우울증이 결국 공황장애, 불안장애 증상으로 왈칵 쏟아지고 나니 일상이 불편해 병원을 안가고는 못 배기게 되었습니다. 몇번을 문앞에서 돌아섰던 병원에 결국 기어들어가 의사를 대면했습니다. 몇가지 기계적인 검사지를 작성하고,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증상에 대해 상담하고.. 더보기
최근의 정신과 투병기 - 나를 사람으로 보아주는 정신과 의사를 만났습니다. 얼마전 (각기 다른)여러 사람이 추천해준 정신과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간 치료효과를 느끼지 못해 치료를 잠시 중단한 상황이었습니다. 새로 만난 의사와 잠시 상담하고,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한주간 약을 복용하고 의사를 만나 몸상태를 설명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약을 드시면 안되겠는데요? 라고 했습니다. 아니, 근 2년 가까이 먹은 약을 먹으면 안된다니. 말인즉슨 보통 약의 기대효과와 정반대의 증상이 나타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황당한.. 저는 몇년 전부터 광장공포증을 동반한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뭐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이들같은 생활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는 제가 병을 앓는 이유가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기 때문이라.. 더보기
20.04.02 변비같은 생각들 - 한동안 디지털 드로잉을 열심히 했습니다. 일이 적어 한동안 집에 있게 되어 답답한 차에 잘됐다 싶어 밥먹고 아가와 놀아주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이 언제든 전원만 켜면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색을 바꾸는 과정도 간단해서 오랜만에 집중력있게 드로잉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디지털 펜과 액정 화면이 닿는 궁합이라는 것이 그리 좋은 느낌이 아닙니다. 종이에 연필로 그릴 때, 또는 종이에 붓을 댈 때, 캔버스에 붓을 댈 때는 표면의 질감과 매개의 질감을 손끝에서부터 느끼며 강약이라든지 각도를 조절하게 되는데 디지털은 오직 단단한 액정과 펜촉의 부딪침 뿐입니다. 가격이 있는 종이에 그림을 그릴 때면 손목에 돌아오는 감각이 아주 만족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여러가지 환경적인 요.. 더보기
20.02.01 요즘은 시를 써보려 해요 -요즈음은 출퇴근길에 주로 시를 적습니다. 스스로 한참 전부터 이루고 싶었던 일이고, 그만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트에 끼적여보고, 고쳐보고, 내가 하려던 말이 맞는지, 써놓은 것이 어떤 느낌인지 되새겨보는동안 지루한 이동시간이 금새 지나갑니다. 누군가 보기에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이 작업들은 나에게 일종의 해방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산문을 적을 때에 아무리 적어봐도 다 전하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나도 모르는 공간 속에 가득 담아내어주는 말의 신비함에 나의 어떤 곳이 정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오랫동안 시인들을 동경했습니다. 시인들은 내가 상상해본 적도 없는 세계에 아름다운 말들의 그물을 던지는 이들이었고, 거기서 건져낸 것들 또한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조금 두려운 것들이었습니다. .. 더보기
2019.11.19 펜에 든 잉크가 말랐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외에는 따분할 것이 없는 요즘이다. 여유가 생길 땐 옷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데에 집중한다. 밀려드는 일감을 묵묵히 받아내다 보면 날이 성실히 저문다.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을 채워냈다. 의학의 도움으로 나는 예민한 신체가 만들어내는 고민거리들을 어딘가에 가둬 두는 데 성공했다. 간혹 날이 흐리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에 그것들이 나를 투욱 건드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 그것들을 메모장에 가둔다. 몇 년 전부터 2016년 광군절에 인터넷으로 산 파커 만년필로 글을 쓴다. 이 펜은 몇일동안 글을 적지 않으면 몸체에 든 잉크가 금새 말라버린다. 다시 글을 적고싶으면 귀찮더라도 한참 찌꺼기를 씻어내야 한다. 미지근한 물에 담가 펜을 흔들어 씻어낼 때마다 내가 잉크를 담아놓고는 몇.. 더보기
노동을 시작하며 1. 공부를 마치면 한동안(혹은 죽는 날까지) 육체노동을 해야겠다 결심한 후 미루지 않고 실천한 것은 결국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만 나의 예상대로 단순한 노동이 머릿속의 잡생각들과 고민들, 불안함과 우울함을 모두 날려주진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은 마치 한여름에 찾아온 염증처럼 끈질기게 내 몸을 떠나지 않았다. 난 끝없이 밀려들어오는 일감들을 못본 체하듯 내 생각에 고리를 걸고 온 힘을 다 해 심연으로 끌어당기는 그것들을 못본 체했다. 하루는 아침에 일터에 도착했는데 너무 흥이 나 나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다. 출근길에 본 파랗고 서늘한 하늘과 구름을 밟고 걷는 느낌이었다. 마침 그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정신과에 나의 우울감을 고백하고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으려 큰 결심을 한 참이었다. 영문을 알 수.. 더보기
두 어머니 -10년 전에 어버이날을 맞아 야심차게 날 키워주신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렸다. 지금도 그렇지만,나의 손기술을 위해 인생의 중반부를 통채로 쏟아부어주신 어머니께 드릴 것이 딱히 없었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내 마음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어머니의 희생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지금보다 훨씬 흐릿하고 미숙했던 시기였다.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일을 부모에 대한 원망과 구분하지 못했다. 숱한 어리석은 자녀들과 똑같이, 나도 어리석다. 그런 어리석음으로 더듬더듬 그림을 그려 보여드렸을 때, 의외로 어머니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런 것좀 그리지 말라는 말을 하셨다. 기대하는 것도 실망하는 것도 받는 이의 몫이어야 마땅하지만, 낙심한 것은 나였다. 어버이날을 맞아서 근 10년만에 같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