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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하는 생각

2019.04.05 어린 내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뜻을 밝혔을 때, 모두들 돈이 안될거라며 반대했다. 그 길 위에서 정말로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견뎌야 할 거라고 말해준 어른은 없었다. 내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그 순간부터 나는 고독을 쌓아가고 있었다. 만나온 많은 이들이 나를 자신의 인식틀 안에 구겨넣으려 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억지스러운 종교의 틀 안에 나를 가두려는 폭력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어느 순간 체념했다. 내 부모도 하지 못한 일을 타인에게서 기대하기엔 스스로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 서지 못해 병들었다. 나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나는 그림이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미천한 이들을 위해 인간이 되어 죽음으로 뛰어든 내 주인의 종과 증인으로서의 역할이라 생각.. 더보기
2019.02.05 마음을 비워낸 자리에서 내가 삶을 위해 무언가를 길어내야 할 우물에는 지금 무엇이 들어있을까? 한동안 몸이 아파 꼼짝없이 널부러진 채로 며칠을 흘러보냈다. 몸은 쉬어야 하지만 나의 정신은 전혀 쉬지 못했다. 어떻게든 긴장을 풀어내기 위해 누워서 아무 영상을 틀어놓고 멍하니 보고 있었다. 몸이 약해지니 별 것 아닌 것에도 눈물이 났다. 화가 날 수도 있고 실없는 웃음이 날 수도 있었겠지만, 눈물이 났다.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자니 어째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닌 것 같았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을 용기도 없고, 진짜로 그럴리 없을거라는 확신이 있는데도 그렇게 생각했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죽어야 할까? 죽기 위해 무얼 해야 할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하나씩 내 안에서 무언가 멍울진 것을 .. 더보기
2019.01.24 폐허를 그려놓고는.. 2018년도에 가장 스트레스 받았던 그림들입니다. 중국에 둘 곳도 마땅치않고, 한국에 가져올 생각에 답답해서 버리듯 경매에 내놓고는 신경을 꺼버렸습니다. 만약에 팔리면 아기 분유값 기저귀값이나 보태야지 싶었습니다. 아님 말고..애초에 그림으로 돈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돈에 집착하는 순간부터 안그래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그림이 더 싫어질 것 같았습니다. 경매 예정일이 한참 지나서야 생각나 부랴부랴 연락해보니 아무도 사지 않았다 합니다. 나무틀에 돌돌 말린 채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는지 포장지에 이런저런 표시가 적혀있고, 번호가 매겨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돌려받을 때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사진도 제대로 찍어두지 않았습니다. 연말에 한국에 돌아와 그동안 혼자 아이 돌보느라 지친 .. 더보기
2019.01.13 묵은 생각들을 정리합니다. 일상이 쌓여가면서 제 스스로에게 여러가지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그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지만, 내가 서있는 자리에 대고 질문을 품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 종종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만할 때가 많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떠오르는 질문들은 제 임시 노트에 지저분하게 쌓여갑니다. 이 모든 질문들은 보통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관들을 위협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사실이라 믿고있던 것들을 뒤흔듭니다. 그렇기에 이 질문들에 대한 나 나름의 답을 늘어놓는 것은 자기 모순을 극복해보려는 발버둥이자 변명같은 것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의 모순을 더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불편한 질문들이 쌓여가는 것이 그 다음 여정을 향해 발을 내딛는 것을 망설이게 만드는 탓에, 어떤 매체.. 더보기
2018.07.29 묵은 생각들을 햇빛아래 널어놓습니다 제게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가르쳐줄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남들과는 시작점이 많이 달랐습니다. 누군가가 검증된 길로 성큼성큼 걸어갈 때마다 저는 한걸음 떼기가 두려워 제자리에 멈춰있었습니다. 먼저 앞으로 나간 이들 중에는 그 길이 잘못돼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한 이도 있고, 남들이 따라갈 수 없는 지경까지 나가버린 이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먼저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도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어떤 길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쯤되면 내게도 뭔가 열매가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초조함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캄캄한 미래가 나를 답답하게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말고 다른 이들도 사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혹은 이 길이 맞는건지 불안해하며 달리고 있다.. 더보기
18.07.08 값싼 정답은 믿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인문학이나 종교에 답이 있다는 말을 쉽사리 믿을 수 없습니다. 답은 우리의 발로 땅을 밟아 걸어가는 길의 마지막에 있을 것입니다. 인문학과 종교는 현실에 뿌리를 둔 우리에게 정말 곤란한 질문을 던져댈 뿐입니다. "자, 그럼 넌 이제부터 어떻게 할래?" 라고요. 대학과정이 제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입니다. 대학생활이 삶에 대한 뚜렷한 답을 주었다면 더이상의 공부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마침 미술을 전공하여 졸업과 동시에 '답없는' 백수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 생각은 더 견고해졌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교회에서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저는 스스로의 지식에 물음표를 던져보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의 .. 더보기
18.07.05 나를 부끄럽게 하는 얼굴들 오랜만에 집앞 가람길을 달음질했습니다. 걷거나 달리면 심박수가 빨라지고, 뇌에 공급되는 피가 많아져 많은 생각들이 끓는 물처럼 오갑니다.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던 생각과 기억들도 함께 번뜩였다가 멀어지고, 다시 가까운 기억과 섞여듭니다. 억지로라도 잊고 있었던 일들을 마주하게 되어 당황하게 됩니다. 차분하게 집안에 들어있는 동안에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았던 수많은 기억들. 그 사이엔 얼굴이 붉어지도록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이들의 얼굴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며칠전 참석한 공부모임에서 다시금 상기하게 된 "타자의 얼굴은 윤리적 명령이다."라는 레비나스의 말이 나를 뜨끔하게 합니다. 학부시절 추천받아 읽은 사르트르의 "타인은 나의 지옥"이라는 말과는 얼마나 다른 의미일까요. 우울증이 심하던 제가 그토록 사람을 만나는.. 더보기
2018.06.18 여름이 지나면 중국에서 아기와 함께 지낼 방을 구하기 위해 2년간 정든 작업실을 떠나게 됩니다. 매일 작업실을 관통하며 찬란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붉은 햇빛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나는 항상 참 분에 넘치는 좋은 환경을 누리고 사는구나 생각합니다.제가 2년동안 작업한 이 공간은 스스로의 노동의 대가로 마련한 곳이 아니라, 저의 가능성을 믿어준 많은 분들의 배려로 대가없이 받은 공간입니다. 그 배려로 전 가족을 꾸려 과거의 저를 극복할 수 있었고, 새 생명을 맞이했습니다. 아끼는 이들을 대접하고, 화폭에 펼쳐둔 제 생각을 전했습니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자기 분의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참 민망하고 부끄러운 생각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면서 대가없이 받은 모든 것들을 떠올려보면 꼭 .. 더보기
18.05.14 외국인들의 축제 남경은 중국에서도 비교적 외국인이 많은 도시라서 그냥 길을 걷다가도 심심찮게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흑인들을 차별하고 하대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본 바로는 중국인들은 흑인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있는 학교에도 흑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이곳에 와서 지내고있는 흑인 녀석들이나 몽골 녀석들은 노래와 춤을 참 좋아하는데, 처음엔 정말 정말로 몹시 당황했더랬죠. 이녀석들이 한 방에 모여서 자정이 다되가는 시간에 뱃심을 다 써가며 합창을 하고 북을 두드리는데, 바닥이 울릴 정도의 큰 소리였습니다. 저와 아내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습니다. 아니 다음날 일정을 따져보기 전에 어릴때부터 도시생활이 익숙한 저는 이 상황을 도저.. 더보기
17.10.04 기러기아빠(?) 불을 발견하다. 기러기아빠(?) 불을 발견하다. 연휴를 맞아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혼자 지내다보니 이런 게 필요해지는 것 같다. 숯을 구해다가 오뚜기 참치캔을 화로로 삼아 숯불구이를 해먹었다. 연기가 좀 났지만 베란다 바로 앞에 큰 나무가 있어 다 가려주었다. 평소 사먹던 돼지고기가 전혀 다른 고기가 됐다. 이건 고기가 아니라 그냥 잘 익은 육즙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그동안 속은 느낌이다. 닭고기도 구워보았다. 앞으로 가스렌지를 쓸 용기가 생기지 않을것 같아 걱정됐다. 준비과정이 번거롭고 뒷정리도 귀찮지만 한 입 맛을 보면 과정같은건 기억도 나질 않는다. 고기를 다 익히고 숯불의 남은 열로 재미삼아 커피를 볶아보았다. 하루를 묵히고 갈아 마셔보니 커피에서 과일주스향이 난다. 나는 불을 발견했다. 그것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