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저녁 이후로 완전히 뒤틀린 일상을 보냈습니다. 평범하던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줄곧 권력 있는 사람들의 위선을 들이받고, 약하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셨습니다. 예수는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위협이었습니다. 국어사전에 권력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라 되어 있습니다. 권력에 눈먼 사람들은 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매달기 위해 모든 정치적 힘을 동원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정치적 권력도 권리도 없이 유대인 공회와 빌라도와 헤롯에게 불려 다니며 심문당하고 모욕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땀을 피같이 흘리며 피하려 했던 하나님의 계획이 하찮은 권력을 가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저에게 위로가 됐습니다.
인간이 권력에 집착하는 이유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은 인간의 가장 큰 권력조차 하나님의 근원적 창조질서 아래에 있는 유한한 힘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이스라엘의 종교권력은 2천년이 지난 지금 믿기 어려운 학살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매일 속보가 쏟아지는 혼란스러운 국내 정치뉴스 사이에서 읽게 된 기사 제목입니다. ‘가자 전쟁’ 437일째···팔레스타인서 4만5000명 사망, 그 절반 이상이 여성·어린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한 아일랜드의 자국 대사관을 폐쇄했습니다. 아일랜드 또한 강대국들에게 오랫동안 고통을 당한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가장 큰 용서가 일어났던 이스라엘에서 지금 세계에서 가장 대규모의 일방적이고 명분 없는 살육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천년 전 돌아가신 예수님과, 팔레스타인에서 사망한 4만 5천의 영혼들과, 이번 달 우리 나라를 지켜낸 단단한 민주주의를 위해 돌아가신 많은 이들의 영혼은 23장43절의 말씀처럼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 상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탐욕이라는 인간의 죄에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돌아가셨고, 이 영혼들은 23장 41절의 죄수처럼 죄 없는 예수님의 희생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2장 42-44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십시오." 그 때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에게 나타나서, 힘을 북돋우어 드렸다. 예수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
다음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반란군에 의해 살해당한 26세 야학교사 박용준의 마지막 일기에 적힌 내용입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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